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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보천교의 민족운동 자료집 I, II집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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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보천교의 민족운동자료집 I, II 권

 

일제강점기 보천교의 민족운동자료집 편찬위원회 지음

전라북도.정읍시.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발행

 

 

 

간행사

 

 

 

'보천교의 민족운동사 연구’를 위한 초석 마련

 

 

일제강점기 보천교(普天敎)의 민족운동사 연구는 이제 시작 단계이다. 물론 30여 년 전부터 안후상 선생이 관련 연구를 진행해 왔으나 고군분투 그 자체였다. 여기에 김재영 박사와 김철수 교수 둥이 힘을 보랬지만 학계나 일 반인의 보천교 인식은 여전히 관련 연구를 따라가지 못하였다.


객관적인 연구 결과는 많음에도, 학계나 일반인의 보천교 인식은 식민지 시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처럼 부정적 인식이 남아 있는 이유 가 운데 하나는 일제의 민족종교 말살정책이었다.  예컨대 일제가 보천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작위적으로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부정적 안식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관련 연구의 활성화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였다. 더불어 연구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충분조건안 객관적 자료의 확보가 절실하였다.

 

근래에 일제강점기의 신문이나 잡지의 관련 기사나 일제의 판결문이나 공 문서 등이 적잖게 발굴되었다. 물론 보천교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안후상 선생이 수십 년에 컬쳐서 발굴한 것이다. 최근에는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데이터베이스’나  국기기록원의 ‘독립운동관련판결문  데이터베이스’등이 구축되면서, 누구든 마음만 먹으면 관련 자료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앞의 국가 기관의 데이터베이스에 구축된 자료들과 안후상 선생이 발굴한 자료들은 이미 공개된 상태이다. 그런데 관련 자료들을 연구자들이 쉽사리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가? 그 첫 번째는 자료의 종 류와 그 양이 너무 많고 방대하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자료의 원문이 일어(日語)의 고어(古語)나 초서(草書)로 돼 있어, 해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일본어에 능통하지 않다면 사실상 관련 자료의 독해는 어려울 것이고, 새 롭게 연구하고자 한 연구자들의 접근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십여 년 전부터 안후상 선생과 함께 일제강점기 보천교의 민족운동사에 관심을 갖고서 관련 정책을 줄기차게 펼쳐온 전라북도의회 장학수 의원은 바 로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였다.
장의원은 방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 기 위해서라도 자료의 번역과 해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장의원 의 선견지명에 관련 연구자들은 한 뜻으로써 응원하였다. 그러나 관련 자료 의 번역과 해제를 선뜻 해보겠다는 연구자는 나나타지 않았다.


장학수 의원은 자료의 번역과 해제에 앞서서 정책적으로 보천교 관련 사 업을 추진했었다. 보천교의  민족운동사  관련 보고서의 발간(2014)이나 보 천교의 민족운동사 관련 학술대회 개최(2015)  둥은 장의원의 관심과 지원 에서 비롯되었다. 장의원에 의해서 추진된 이와 같은 사업들은‘보천교의 민족운동사’가 학계나 일반인으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기 위한 일종의 교두보인 셈이다.


앞의 두 사업을 성공리에 끝마친 장학수 의원은 여전히 보천교의 민족운 동사 연구를 위한 초석은 발굴된 관련 자료의 번역과 해제라는, 신념을 굽히 지 않았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장의원은 그의 신념대로『일제강점기 보천교 의 민족운동 자료집』발간사업을 추진하였다.


전라북도와 정읍시의 지원으로 제가 소장으로 있는 충남대학교 충청문화 연구소가 진행하는 이번『일제강점기  보천교의 민족운동 자료집』발간사업 은 이렇듯 장의원의 굳건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관련 사업의 지원이 2017년 5월에 결정이 되면서, 너무 늦게 결정 이 되면서 충분한 인력이나 시간의 확보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하지만 저 력 있는 관련 연구자들의 땀과 노력으로 시간상 촉박했지만, 업청난 성과를 이루었다. 짧은 기간에 자료의 발굴과 번역, 그리고 원고의 교열과 교정, 편집 등을 일궈낸 편찬위원들의  노고가 아니었다면 이번 발간사업은 성공하지 못했을것이다.


이번 발간사업을 진행하고 실무를 담당한 정원기 선생과 김보혜 선생의 헌신은 사업을 성공리에 마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더불어 전라북도 학예연 구관 김승대 박사의 세심한 관심과 지원이 있었기에 본 사업은 가능하였다. 그리고 번역작업을 조용히 보조한 최혜린 선생과 안정은, 안재영 군의 노고 도 본 자료집을 더욱 빛나게 하였다.


이번 사업을 있게 한 전라북도의회 장학수 의원과 사업을 시의적절하게 뒷받침해 온 전라북도 송하진 지사, 정읍시 김생기 시장께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 앞으로 제2의 동학농민혁명으로 인식될 수 있는 일제강점기 보천교 의 민족운동사를 연구하고, 이를 알리는 데 있어서  『일제강점기  보천교의 민족운동 자료집』은 하나의 초석이 될 것이다.


수집한 자료의 방대함에, 『일제강점기  보천교의 민족운동 자료집』(I. II)에는 일부의 자료만을 선별하였다. 향후에도 관련 사업은 지속될 것이고, 따 라서 앞의 자료집에 게재치 못한 자료들은 추후 작업에서 반드시 포함시킬 것이다.


일제강점기 보천교의 민족운동사 복원은 곧 우리 사회의 상식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바로미터라는 것을 항상 생각하면서, 고단했던 작업을 마무리 짓겠다. 이 모든 작업들이 전라북도와 정읍시의 역사·문화적 정체성 형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하면서 인사를 가름한다.

 

 
2017년 12월 30일


일제강점기 보천교의 민족운동 자료집 편찬위원회 위원장 김방룡 씀 

 

 

 

차례 

 

I 권

 

?004  간행사

 

010 일러두기


011 해제논문_일제강점기 보천교의 민족운동사 연구를 위한 사료 검토 -일제의 판결문과 ‘공문서’를 중심으로 -  I 안후상

 

056 번역문(판결문)_보천교의 ‘독립운동관련판결문'  I 안후상

 

254 번역문(공문서)_보천교 관련 ‘일제  공문서' I 김철수

 

314 원문(판결문)_普天敎의  '獨立運動關聯判決文'  I 편집부

 

537 원문(공문서)_普天敎 관련 ‘日帝  公文書' I 편집부


614 편찬사업 소개
 

II 권

 

004  간행사

 

010 일러두기

 

011 해제논문_『보천교일반(普天敎一般)』과 『양촌및외인사정일람(洋村及外人 情一覽)』의 내용과 자료적 의의 |김철수


078 번역문_『양촌및외인사정일람(洋村及外人事情一覽) | 에미코(번역)  김철수·안후상(감수)


174 번역문_『보천교일반(普天敎一般)』 | 에미코(번역)  김철수·안후상(감수)


299 원문_『洋村及外人事情一覽』  | 편집부

 

360 원문_『普天敎一般』  | 편집부


430편찬사업소개?

 

 

일러두기

1. 수록 자료
1)  보천교의‘독립운동관련판결문’은‘온라안 국가기록원 독립운동관련판결문  데이터베이스’에서  발췌하였 다. 그 외의 관련 판결문도 국가기록원에 소장돼 있는 것을 발췌하였다.
2)  보천교 관련‘일제   공문서’는‘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한국)와‘아시아역사자료센타  국립공문서관'(일본)에서 발췌하였다.
3) 「보천교일반(普天敎一般)」(『管內最近勿狀況說明資料(全北)』附錄)은 일본 학습원대학(學習院大學)동양문화연구소(東洋文化硏究所; 友邦協會)에 소장돼 있는 것을 발췌하였다.
4) 「양촌급외인사정일람(洋村及外人事情一覽)」은 국가기록원 소장본을 발췌하였다.


2.  번역 원칙
1) 번역은 원문을 그대로 옮기되 우리글에서 잘 쓰이지 않는 일본식 표현이나 한자어는 뜻이 통하는 한국어로바꾸었다.
2)  맞춤법 띄어쓰기는 국립 국어원 외래어표기법을 따랐다. 단 관례에 따라 예외를 두었다.
3) 원문이 지나치게 길 경우에 의미가 훼손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여러 문장으로 나누었다.
4)  번역문 가운데 번역자의 설명이 필요할 때에는 (     ) 안에 설명을 하고 말미에 ,_역자’라 표기하였다.
5) 각주는 ‘역자주'이다.


3. 편집 원칙
1)  번역문은 한글로 하되, 한자(漢字)가 불가피한 경우에는 (      ) 안에 한자를 넣었다.
2)  번역에 있어서 미상의 글자는‘口口’로 표시하였다.
3)  전략 중략 후략 둥은‘전략', '중략', '후략’또는 '......'로 하였다. 단 원문에서 생략은 '...'로 하였다.
4) 번역문에서 연도는 (     ) 안에 서기(西紀)를 넣었다. 예: 메이지40년(1907)
5)  원문은 본 자료집 뒤편에 별도로 게재하였다.
 

 

편찬사업 소개

 

일제강점기 보천교의 민족운동 자료집 편찬위원회

 


◆ 편찬사업
 발 행  처: 전라북도. 정읍시.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사업주관: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사업기간: 2017년 5월 15일~ 12월 30일
 편찬위원: 김방룡(위원장), 김재영, 김철수 안후상, 에미코, 김승대, 정원기
     - 기획: 안후상
     - 편집: 안후상, 김철수 정원기, 이대건
     - 집필: 안후상, 김철수 에미코, 송영은, 정진숙
     - 진행: 안후상, 정원기, 김보혜
     - 연구보조: 최혜린, 안정은 안재영


◆ 편찬위원
    - 김방룡/ 충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충청문화연구소 소장
    - 김재영/ 사단법인 정읍역사문화연구소 이사장
    - 김철수/ 중원대학교 종교문화학과 교수
    - 안후상/ 한국신종교학회 이사, 고창북고 교사
    - 에미코/ 전라북도 고창. 작가, 한.일통번역가

    - 김승대/ 전라북도 문화유산과 학예연구관
    - 정원기/ 전남대학교 사학과 대학원(석사수료)
    - 송영은/ 종교학쟈 일본 도쿄대학교 종교학 박사
    - 정진숙/ 일본 나고야. 한일통번역가
    - 이대건/ 책마을해리 촌장
    - 김보혜/ 충남대학교 철학과 대학원(석사수료)
    - 최혜린/ 전남대학교 사학과 대학원(석사수료)
    - 안정은/ 원광대학교 가정교육과
    - 안재영/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 편찬일시 및 출판사
   - 출판일시: 2017년 12월 30일
   - 출 판  사: 도서출판기역

 


*본  자료집은 전라북도와 정읍시의 지원으로 관련 연구자나 이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어드리고자, 그리고 일제강점기 보천교 민족운동사의 정당한 복원을 위하여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가 번역, 편집, 제작한 비매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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