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하늘이다. 동학농민혁명 갑오의사를 기리며
최정숙(시인)
한국문인협회 제도개선위원, 짚신문학회 이사,
시집 『아리랑의 꿈』, 『영혼, 그 아름다운 사랑』 외 다수.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몰아치던 광풍이 잠들면
목숨 꽃 진 자욱 선연해 더욱 선연해
베어진 아비의 머리가 걸리고
불길에 생살 타 들어갔던
아비의 역사는 이 땅의 흙이 되리니
풍요를 품은 흙이 되리니
그렇게 우리가 왔다. 오늘이 있다
거친 들판을 맨발로 걸어 온 희디흰 백성들아
울지 마라 숨 죽여 울지 마라
황토현 고갯마루 넘으며 쓰러진 목숨들아
발 딛고 선 그 어디
그대들 핏물 지워진 곳 있더냐
녹두꽃 뚝뚝 져버린 대지
내 아비의 피 뚝뚝 여울진 대지
단장斷腸의 고통을 딛고선 민족이여
다시는 울지 마라
역사는 백성의 것이다
너와 나의 자주 너와 나의 평등
첫 새벽 동트듯 아침의 빛으로 퍼지어
아비가 심은 꿈 또 그 아비가 품은 뜻으로
세상 천지는 사람이 하늘이다
사람이 하늘이다
너와 내가 거룩한 하늘이다
2017년 9월 29일(음력 8.10)
제1부 ‘내가 사는 지역을 중심으로 역사와 세계를 본다’
서울도 중앙이 아닌 하나의 지역이다. 이런 관점에서 서울을 중심으로 중앙과 지방으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에 나는 반대한다. 지방은 서울에 예속되거나 종속된 곳이 아닌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공동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서울과 중앙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오래된 관행과 잘못된 시각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지방사인가, 지역사인가
영미권에서는 향토사Provincial history, 지역사Region history, 지방사Local history 등의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크게 구별해서 사용하지는 않는다. 중국에서는 일찍부터 ‘방지학(方誌學)’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고, 일본에서는 향토사라는 용어를 쓰다가 지방사, 지방사에서 지금은 ‘지역사’로 바뀌었다.
국내에서는 이 분야를 대표하는 연구자인 이해준 교수(공주대학교)가 지역사를, 박찬승 교수(한양대학교)와 강봉룡 교수(목포대학교)가 지방사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하지만 용어 사용에 대한 학계의 어떤 합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흔히 전문역사가의 연구방법을 지방사 또는 지역사, 아마추어 역사가의 연구를 향토사로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향토사가도 전문역사가에 준하는 연구실적을 내는 경우가 있고, 전문역사가라고 하지만 학문의 기본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려운 글도 많기 때문이다. 특히 엉터리 방법론으로 사실을 호도하는 연구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내가 ‘지역사’라는 용어를 고집하는 것은 이 용어를 쓰는 연구자들이 상대적으로 많기도 하지만 지방은 중앙과 대비되는 용어로 ‘변방’을 의미하는 용어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나는 공간적인 의미에서 변방에 사는 주변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새로운 역사, 중앙이 아닌 ‘지역(지방)’에서 시작되었다
신영복(1941-2016)은 “사회변화는 ‘사상투쟁’에서 시작된다. 사상은 권력의 중심이 아닌 권력에서 멀어진 변방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새로운 역사는 중앙이 아닌 변방에서 만들어지고,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변방에는 늘 새로운 엘리트 집단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 인류역사의 중심은 오리엔트에서 지중해로, 다시 서유럽에서 영국으로,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렇게 변방에서 변방으로 이동했다. 신라말기에는 경주가 아닌 지방에 근거지를 둔 ‘호족세력’과 ‘선종세력’이 있었다. 선종 사상은 한마디로 ‘깨우친 자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열린 사고로 임금은 부처요, 귀족은 보살이며, 중생은 백성이라는 ‘왕즉불(王卽佛)’ 사상에 사실상 반기를 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여기에다 도선(道詵)의 풍수지리설은 경주 중심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방을 중심으로 국토를 재편성하려는 움직임으로까지 발전하였다. 고려 말기에는 주로 ‘향리’에 머물던 신진세력 ‘사대부’가 있었고, 그들이 수용한 ‘성리학’은 새로운 국가사회의 지도이념으로 등장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는 대부분 중소지주층이었다. 조선 후기 실학의 선구자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이 새로운 조선을 꿈꾸었던 곳이 부안이었고,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실학을 집대성한 곳은 유배지인 강진이었다. 실학은 전라도에서 시작되고 전라도에서 완성된 셈이다. 조선말기에는 한양이 아닌 경주의 향반 출신이자 서자였던 최제우가 ‘동학’을 창시하였다. 경주에서 발생된 동학은 전라도 고부로 넘어오면서 혁명으로 터지고, 사회변화를 이끌어내는 이념과 사상으로 작용하였다. 이와 같이 역사의 전환기 때마다 역사의 중심에 지역이 있었고, 새로운 사상이 있었다.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해 모른다는 것은 ‘뿌리’를 모른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뿌리를 모른다는 것은 근본을 모른다는 의미와 같다. 물은 발원지가 있기 마련이고, 나무에는 반드시 뿌리가 있듯이 모든 사물에는 근원이 있기 마련이다.(‘水有源 木有本’) 근본(根本)에서 ‘본(本)’은 나무 목(木)에 뿌리를 가로 획으로 나타낸 글자라는 것을 새길 필요가 있다. 지역사는 나무줄기에 해당된다. 지역사가 올바르게 정립될 때 나라 전체의 올바른 역사의 정립을 기대할 수 있다. 지역사가 바로잡혀야 역사가 튼실해지는 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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