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의 역사산책





김재영의 역사산책 연재를 시작하며- 글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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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글 김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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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 안중근 기념관(중구 소월로 91) 

 

글쓴이의 말 

 

“기억되지 못한 역사는 반복된다.”

 

‘역사는 이긴 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역사는 기억하고 기록하는 자의 편’이라고 한다. 미래는 그렇게 역사를 소중히 지켜나가는 자들에게만 의미 있는 길을 열어준다고도 한다. 우리는 일제의 식민통치를 경험한 민족으로 다시는 이러한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후손들에게 ‘민족운동사’를 가르쳐야 할 책무가 있다. ‘기억되지 못한 역사는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똑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지만 유사한 사건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오늘을 사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 역사학이란 학문이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도 교육과정에 ‘민족운동사’를 개설하지 않은 것은 우리의 가장 큰 잘못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내가 2019년에 『한국민족운동사와 정읍』을 발간하면서 쓴 서문의 일부이다. 같은 맥락으로 이 번 책에서는 독립운동가들 조차 영웅으로 여기고 닮고자 했던 안중근(安重根) 의사와 아나키스트(Anarchist) 백정기 의사의 항일독립운동을 역사산책 제1부에 넣게 된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다 안다고 하는 안중근 의사를 사실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연구자를 제외하곤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일선고교에서 한때 한국사와 근현대사를 가르쳤던 내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안중근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맨 앞에 위치해야 할 위대한 사상가이자 독립운동가이다. 

 

그러함에도 안중근 의사가 의병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되며, 포로로 잡힌 일본군을 만국공법이라는 국제법을 적용해야 한다면서 적을 살려줬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하지만 안의사 자신은 안타깝게도 만국공법이라는 국제공법을 적용받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안중근 의사 가문에서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은 사람이 무려 15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될 것인가. 안의사가 사형이 집행되기까지 5개월 간 간수임무를 맡았던 일본인 치바 토시치(千葉十七, 1885-1934)조차 그의 인품에 감동을 받고 평생 안의사의 명복을 빌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안의사의 처형 당일인 3월 26일 치바에게 써 준 유묵이 바로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일은 군인의 본분이다.’라는 뜻의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이었다.

 

그간 안의사의 인간적인 면모는 제쳐둔 채 영웅적인 행위만 부각된 측면이 있고, 잘못 알려진 부분도 상당히 있어 그 부분도 연구성과를 반영하여 본문에서 다루었다. 다만, 읽는데 불편할 수도 있으나 연구자들의 학문적인 성과를 인용한 것인 만큼 출처를 분명히 하였다.

 

한편 백정기(白貞基) 의사는 한국과 일본, 중국을 넘나들면서 일제에 맞서 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로 이봉창(李奉昌)·윤봉길(尹奉吉) 의사와 함께 '3의사'로 불리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교과서에 이름조차 실리지 못했다. 이러한 실태를 인식한 전북도교육청에서 2015년 한국사부교재로 만든 『전라북도의 근현대인물이야기』에 백의사에 관한 내용을 3쪽에 걸쳐 서술하였다. 백의사가 그간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나키즘과 공산주의를 같은 개념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 이강훈(李康勳)은 백의사는 한마디로 ‘자유혁명가의 전형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사지로 나갈 때는 항상 앞장서기를 원했고, 동지를 아끼며 사랑하는 마음은 최고의 휴머니스트였다. 

 

어느 의미에서는 자기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성인에 가까웠다.”고 그는 자서전에 남겼다. 백의사는 현재 서울 효창공원 3의사 묘역에 이봉창·윤봉길 의사와 함께 나란히 잠들어 있다. 그 맨 왼쪽에는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모시기 위한 가묘가 마련되어 있다.

 

제2부에서는 학술대회와 세미나, 지역 언론에 쓴 칼럼과 인문학 강의에서 했던 내용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짧게 쓰고 고쳐 썼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서 책을 썼다고 했다. 『답사기』에서 전남 ‘강진’을 남도답사 1번지로 소개한 까닭을 묻자 그는 “모든 것을 서울과 중앙 중심으로 바라보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다.”라고 대답했다. 지역을 역사의 중심으로 보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 차원에서 나는 남들이 잘 모르는 정읍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이 책을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의미 있게’ 써 보려고 했다. 재미를 살리면서 의미 있게 쓴다는 것은 가볍지 않게 그러면서도 너무 무겁지 않게 쓰겠다는 뜻이다. 역사란 어렵게 쓰면 읽지 않을 것이고, 재미없으면 끝까지 읽지 않을 것이다. 또 의미 없으면 읽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역사책이란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것저것 쓰다 보니 산책(散策)이 산만(散漫)한 책(冊)이 된 것은 아닌지 걱정 된다. 

 

마지막으로 나는 독자들이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공부하게 되면,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삶에 변화가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이 글을 썼다. 역사인문학에서 지혜와 교훈을 얻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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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원광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교원대학교와 전남대학교에서 각각 역사교육학 석사와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간 전국고등학생선발시험 한국사 출제위원, 전북도교육청 한국사 부교재 집필위원장, 세계유산위원회 문화유산분과 전라북도 위원, 디지털정읍문화대전 기획·평가·집필위원, 정읍시 평생학습센터와 다문화도서관 인문학 초빙교수, 전북과학대학교 경찰부사관과와 간호학과 외래교수를 지냈다. 

 

현재 (사)한국향토사연구전국연합회 부이사장, 한국신종교학회 이사, 정읍문화원 부원장, 월곡차경석기념사업회 학술자문위원, 정읍시 문화재 심의위원, 정읍시립박물관 운영자문위원장 및 유물평가위원, 「전북금강일보」와 「서남저널」 칼럼니스트, 역사 인문학의 산실이자 ‘정읍학’의 학적토대를 마련한 (사)정읍역사문화연구소의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전라북도 각 시·군 지역에서 인문학 강의 중이다.

 

저서로 『김재영의 역사인문학 강의 노트』, 『일제강점기 보천교의 민족운동』(화갑논총), 『근현대 인물한국사』 등 공저 포함, 30권이 있다. 연구논문으로 「정읍지역 천주교 전파와 공소변천」(석사학위 논문), 「일제강점기 형평운동의 지역적 전개」(박사학위 논문)를 비롯, 「호남인재 양성의 산실, 영주정사와 영학숙」, 「동학농민혁명 발생의 종교·사상적 배경」 등 40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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