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의 풍류와 음식문화
김재영 지음
글쓴이의 말
‘지역은 중앙에 종속된 곳이 아닌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공동체이다.’
시인 김지하(金芝河, 1941-2022)가 말했다. “정읍(井邑)은 우주의 단전이요, 지구의 축이요, 한반도의 배꼽이다.” 여기서 ‘단전’과 ‘축’, ‘배꼽’은 중심과 중앙을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단전은 기가 모이는 곳이기에 온 우주의 중심이 되고, 축은 자전하는 지구의 중심이며, 배꼽은 한반도의 중심이 된다. 단전이기에 우주의 기운이 이곳에 뭉쳐 있고, 축이기에 흔들리지 않는 지구의 중심이 된다. 배꼽은 인체의 중앙에 해당하는 곳으로 생명이 탄생되는 것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정읍은 한반도의 중심이자 세계의 중심이 된다.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의 사극점을 기준으로 한다면 중심은 강원도 양구군 국토정중앙면 도촌리 산 48번지 일대이다. 하지만 섬을 뺀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한다면 중심은 충주로 바뀌게 된다. ‘중앙탑’이라고도 부르는 국보 ‘탑평리 칠층석탑’이 충주에 있게 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나라의 중심답게 통일신라 때 나라의 남쪽 끝과 북쪽 끝에서 한날한시에 출발한 두 사람이 이곳에서 딱 마주쳤다는 전설도 있다. 또 국토 중앙에 있는 것을 상징이라도 하듯 높은 언덕 위에 탑을 세웠다. 이 탑이 통일신라 석탑으로는 유일한 칠층석탑이자 14.5m의 가장 높은 탑이다. 지도를 봐도 국토의 중심이 대략 충북으로 보인다. 충주시에서는 이 같은 이유로 탑이 있는 지역의 행정구역을 ‘중앙탑면’으로 바꾼 것이다.
이와 같이 정읍은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의 중심이 될 수 없음에도 시인 김지하가 이렇게 말 한 것은 조선 후기부터 내려오는 ‘남조선 신앙’에 바탕을 둔 것으로,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상이 정읍을 중심으로 열리게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표현한 것이다. ‘남조선 신앙’이란 한반도 남쪽에서 절대적 권능을 가진 어떤 구원자가 출현할 것이라는 오래된 믿음이다. 그 구원자는 바로 ‘진인(眞人)’으로 표현되는 세계를 구원할 메시아를 지칭한다.
그렇다면 왜 정읍인가. 정읍(井邑)은 한 자만 파면 물이 나오는 곳이다. 물은 만물을 생성자육(生成慈育)할 수 있는 ‘생명력’과 넘치면 엄청난 ‘파괴력’을 동시에 갖는다. 물은 흐르면서 자연 치유되는 ‘재생력’과 ‘새 생명’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여러 물줄기가 한곳에 모였다가 다시 사방으로 번져 나가는 확장성을 갖는다. 그것이 우물이다. 물은 순풍을 만나면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역풍을 만나면 배를 뒤집어엎기도 한다. 이러한 역동성(dynamic)과 확장성은 물론 생명력과 파괴력, 재생력과 새 생명이라는 상징성을 함께 갖추고 있는 지역이 바로 정읍이기 때문이다. 생명에서 파괴로, 파괴에서 재생과 새 생명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이 순환하는 이치이기도 하다.
이 책은 ‘새로운 역사는 중앙이 아닌 지역에서 시작되었다’는 관점 아래 선비문화의 고장이자 혁명(革命)의 도시인 정읍을 중심으로, 제1부 내가 사는 지역을 중심으로 역사와 세계를 본다, 제2부 지역이 새로운 역사의 중심이다, 제3부 ‘전라도의 풍류와 음식문화’로 나누어 쓴 내용 중 제3부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전라도의 풍류와 음식문화’를 책의 주제로 삼은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현대인이 앓고 있는 대부분의 질병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좋은 음식과 음악은 그런 질병과 불안한 우리의 마음을 치유해 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선정한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인문학의 완성을 음악으로 보고, 음악을 대중음악과 서양음악으로 나누어 평소의 생각과 느낌을 적었다. 일상으로 마셨던 차가 이제는 커피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전통주인 막걸리 대신 소주와 맥주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재평가되어야 할 우리 차와 술, 그리고 대중음악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짚어보고자 했다.
나는 2021년에 『정읍을 이야기하다 정읍을 노래하다』라는 책을 인문서적 출판사인 기역(파주)에서 출판한 데 이어, 2024년에는 『김재영의 역사산책』이라는 제목의 책을 역사서적 전문출판사인 선인(서울)에서 낸 바 있다. 두 책이 다행히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아 여기에 용기를 얻어 책을 새로 내놓게 되었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되짚어보고 그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2025년 9월 혁명의 도시 정읍에서 필자 김재영 쓰다.
* 저자 김재영 박사님, (사)정읍역사문화연구소 이사장, 의 허락하에 출판 예정중인 원고를 월곡차경석기념사업회 홈페이지에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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