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남의 3대 양택지, 정읍의 태산(泰山)
태산 고현, 지금의 칠보면 일대는 산자수명(山紫水明)하고 인심이 순후하여 자고로 전남의 구암(영암), 금성(나주)과 더불어 호남의 ‘3대 양택지(명당)’로 손꼽혔다. 태산은 정읍사시井邑四時(봄 초산운인楚山雲姻, 여름 칠보임학七寶林壑, 가을 내장상풍內藏霜楓, 겨울 두승천석斗升泉石) 가경(佳境) 중 하나였다.(백강흠). 「상춘곡」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상춘곡」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보면 ‘나보다 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했던 베토벤의 말이 연상된다. 전원교향곡 1악장이 바로 자연 속에서 느끼는 평화로운 감정과 자연사랑을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한편 무성서원이 있는 칠보 원촌의 이웃 마을 동편에는 최치원이 술잔을 띄우며 풍류를 즐겼다는 유상대(流觴臺)가 있고, 태인에는 그가 음풍농월하며 소요했다고 하는 피향정(披香亭)이 있다. 여기서 풍류를 주색과 가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정극인은 「상춘곡(賞春曲)」에서 자연을 좋아하고 속세를 떠난 자신의 삶을 풍류라 여겼다.
최치원은 유학자이자 최고의 문인이었으며 정치가였다. 외교적으로는 국제통이었다. 그는 고려 전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천년 동안 우리나라 문장의 시조이자 유교의 종장(宗長)으로 추앙받았다. 여기서 ‘종장’이란 어떤 종교를 창시한 인물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고려 현종 때에는 문창후(文昌候)로 추증되어 공자를 모시는 문묘에 배향된 신라 최초의 인물이다.(남동신). 그는 6두품 출신으로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으로 혜성같이 등장했지만 자기의 뜻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후대에 전해져 이규보, 김시습, 휴정, 이서구, 최제우, 김항 등 삼교의 회통 내지 조화를 주장하는 학자와 종교인들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최제우는 최치원의 후손으로 ‘하늘을 떠다니는 고운(孤雲)’과 ‘물에 비친 구름이라는 뜻의 ‘수운(水雲)’이라는 호에서도 사상적 맥락이 같음을 알 수 있다. 최제우는 유·불·선 삼교에서 정수만을 뽑아 동학이라는 민족종교를 탄생시켰다. 동학 교단의 조직인 ‘포접제’는 최치원의 「난랑비서」에 나오는 ‘포함삼교(包含三敎), 접화군생(接化群生)’의 ‘포(包)’와 ‘접(接)’에서 따온 것이다.(최영성).
경주의 포석정과 정읍 태산의 유상대
포석정과 유상대 모두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이라는 놀이를 하던 곳이다. 유상대가 9세기 최치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어 조성된 시기도 두 정원 유적이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재현까지 했다고 하니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도 술잔이 떠내려가면서 엎어지거나 부딪치지는 않을까 하는 의구심은 여전하다. 포석정은 말 그대로 전복[鮑] 형태로 만든 구조로 되어 있다. 주변에 섬돌(디딤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정자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두 곳이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는 신라 땅인 경주에 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옛 백제 땅인 정읍에 있다는 점이다. 또 포석정은 사적 1호라는 상징적인 곳이기도 하지만 인공을 가해 만들었다는 점과 유상대는 자연 그대로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유상곡수연’은 굽어진 물길을 따라 둘러앉아 흐르는 물에 띄운 술잔을 마시고 난 뒤 시 한수를 즉흥적으로 읊는 놀이다. 일종의 ‘시회(詩會)’라 할 수 있다. 이밖에도 우리 선조들은 달밤에 술자리를 마련하여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면서 시를 짓고 자연을 즐기기도 했다. 술을 마셔도 이렇게 격조가 있었다. 이것이 풍류다. 풍류는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것이다. 관련해서 최근에는 정읍을 ‘달의 도시’로 만들자는 정책 제안이 있었다.
《참고문헌》
백강흠, 『정읍시가삼대유보고(井邑詩歌三大遺寶攷)』, 공익사, 1989.
(사)전북향토문화연구회, 『고현(칠보) 문화재 지표조사 보고서』, 1997.
정읍시립박물관, 『외로운 구름, 태산에 깃들다』, 모아디자인, 2013.
최영성, 「한국사상사에서 최치원의 위상」, 『최치원 태산태수 부임 1,130주년 기념
최치원 문화자원 활용 학술대회』, 전라북도·정읍시, 2017.
김재영, 『정읍을 이야기하다 정읍을 노래하다』, 기역(파주),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