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의 역사인문학 산책

 

 

 



 

인문학을 통한 ‘문제 해결력’과 ‘창의력’의 신장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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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 아닌 ’본질‘을 파악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은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인문정신의 함양이다. 여기에서 ‘창의적인 사고’가 나온다.

 

 

①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무덤’인가, ‘제단(祭壇)’인가. 아니면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돌침대’인가. 무덤이라면 왜 많은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돌을 올려놓았는지, 또 여기에 새겨진 ‘성혈(性穴)’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리해야 한다. 성혈은 고인돌 조성 시기에 새긴 것인지, 그 뒤에 새긴 것인지도 따져 볼 일이다. 특히 한반도 전체에서 발견되는 고인돌의 90%가 왜 전라도 땅에 집중되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야 한다. 상상력을 동원한 자연스러운 답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질문에 즉답은 친절한 선생이지만 좋은 스승은 아니기 때문이다.” 탈무드 원전연구소 김정완 소장의 말이다.

 

② 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가 ‘33인’인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불국사의 백운교(白雲橋)와 청운교(靑雲橋)의 계단이 왜 ‘33계단’인지, 조선시대 문과시험 합격자 정원이 왜 ‘33명’이고, 무과시험 합격자가 왜 ‘28명’인지, 태인 피향정의 돌기둥이 왜 28개인지 궁리해야 한다. 이 책 역시 제1부가 17개, 제2부가 16개 총 33개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③ ‘코가 납작해졌다.’에서 ‘코’는 자존심을 의미한다. ‘큰 코 다친다.’는 것은 무안이나 봉변을 당한다는 의미로 쓰는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큰 코’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생각해 볼 일이다. 

 

④ 종교에서는 물을 그냥 ‘물’이라 하지 않고 ‘청수(淸水)’ 또는 정한수, 정화수라고 한다. 물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는 무엇인지 알아보자.

 

⑤ 보신각(普信閣) 종은 왜 ‘33번’을 치는가. 한양대학교 박찬승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제야의 종은 원래 불교사찰에서 한 해를 보내면서 백팔번뇌를 모두 잊으라는 뜻으로 108번 치는 풍습이었는데 1961년부터 33번으로 줄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신라는 전국을 왜 ‘9주’로 나누었으며, 조선은 전국을 왜 ‘8도’로 나누었는가. 경주에서 발생된 동학이 왜 ‘고부’에서 혁명(革命)으로 터지는가. 

 

⑥ 단군건국 이야기에 왜 ‘쑥[艾-애] 한 줌’과 ‘마늘[蒜-산] 20개’를 굴속에서 햇빛을 보지 않고 ‘100일’ 동안 먹으라 했는지, 마늘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인데 당시에 과연 마늘이 있었는지, 또 곰이 왜 하필 삼칠일만인 ‘21일’ 만에 웅녀가 되었는지 궁리해야 한다. 

 

⑦ 우리나라 전통술은 ‘막걸리’다. 막걸리는 ‘농주(農酒)’이자 ‘노동주’이다. 탁주(濁酒)는 ‘텁텁한 술’이지 우리의 막걸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왜 막걸리는 남쪽에서 많이 마시고, 소주는 북쪽에서, 소주와 막걸리의 중간 정도인 청주(淸酒)는 중부지방에서 많이 마시는가. 술에도 왜 이러한 지역적인 차이가 생기는 것인가. 궁리할 필요가 있다.(김재영).

 

⑧ <고려사(高麗史)> 악지에 다섯 곡의 백제가요가 전하고 있다. 남녀 간의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는 ‘정읍사’가 최초다. 원제가 ‘정읍’이다. 정읍곡을 제외한 나머지 4곡은 현재 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읍사가 누천년이 흐르도록 전해질 수 있었던 그 질긴 ‘생명력’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온 것일까.(김재영).

 

⑨ 조선시대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 1548~1598)이 우리나라의 혈맥을 끊기 위해 

쇠말뚝을 박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일제도 한반도의 혈맥을 끊고 큰 인물과 장수가 나오지 못하도록 전국 명산에 쇠말뚝[穴針]을 박았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굳어 있다. 과연 사실인가. 이러한 풍수침략은 구전으로만 전해질 뿐 그 진위를 확인할 길이 아직은 없다. 일제는 ‘음택풍수(陰宅風水)’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관련 기록이 없어 그것이 아니라면 그 쇠말뚝은 무엇인가.

 

⑩ 현재 남한에는 벽돌로 만든 전탑(塼塔)이 모두 다섯 기가 있다. 경북 안동의 신세동 칠층전탑, 안동 동부동 오층전탑, 안동 조탑동 오층전탑, 경북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경기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다섯 기의 전탑 중에서 4기가 신라의 전탑이다. 그 중 3기가 안동에 모여 있다. 안동에 전탑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⑪ 10년 전 일이다. 2013년 3월 1일 인터넷에서 기사를 검색하다 어린 초등학생들이 3․1절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는 학생이 절반에 가깝다는 기사를 보았다. 학원에서 배웠는데 잘 모르니 자세히 알려달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학교에서 ‘계기교육’을 통해 분명 배웠을 터인데 이런 내용을 학원을 통해서 배웠다고 하니 이해가 안 된다. 그렇다면 학교는 뭐하는 곳인가. 4월 8일 3.1절을 읽어보라는 어느 기자의 부탁에 ‘삼점일절’이라고 답했다는 중학생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삼일절’을 ‘삼점일절’로 읽었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문제는 한국 어문규정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을 표시할 때는 월과 일을 나타내는 아라비아 숫자 사이에 ‘마침표’를 쓸 수 있다고 규정해놓고, 이때 마침표 대신 ‘가운뎃점’을 쓸 수 있다고 두 가지를 허용함으로써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어린 학생은 학교에서 가운뎃점이 찍힌 3·1절로 배웠을 것이다. 모든 역사교과서에 3·1절과 3·1운동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혼란을 없애기 위해서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날에만 ‘가운뎃점’을 쓰면 될 것이다. 사실 3·1절의 의미를 잘 모른다면 그 어린 학생이 봤을 때는 ‘삼점일절’로 읽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과연 역사교육이 문제인가.

 

⑫ 그로부터 10년이 지났다. 2023년 3·1절에 세종시 한 아파트 주민이 일장기를 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일본 덕분에 근대화되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일장기를 단 주민은 알고 보니 목사였다. “하필이면 왜 3·1절에 일장기를 달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유관순이 실존 인물이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그러더니 며칠 뒤에는 사무실에 일장기를 달아 논란을 계속 키우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우호적으로 미래지향적으로 나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달았다고 했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는 민족운동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잘못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국경일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국경일에 태극기를 다는 집이 몇이나 되는지 둘러보면 알 일이다. 이제 태극기를 달지 않으면 삼일절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이 역사를 왜곡하고 일장기를 달 태세이니 행여 태극기 부대라고 오해 받는 일이 있더라도 태극기는 꼭 달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 가장 두려운 일은 이런 아픈 역사가 잊혀 져 가는 것이다. 

 

 

진정한 역사공부는 암기가 아니라 ‘사색’이다.

 

□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아먹을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인지, 독립만세운동이 왜 하필 ‘3월 1일’에 터졌는지 의문을 갖고 고민해봐야 한다. 역사학은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더 많은 ‘고민’과 ‘사색’이 있어야 하는 학문이다. 역사학은 암기하는 학문이 아니다. 공자(孔子)도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현실과 동떨어지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독서와 사색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진정한 역사공부는 암기가 아니라 ‘사색’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임진왜란(壬辰倭亂)은 조선과 일본 그리고 명의 중앙정부가 직접 참여한 국제전쟁이었다. 그렇다면 왜놈들이 난리를 쳤다는 ‘왜란’이라는 호칭이 적당한 것인가. 난(亂)은 “정통 정부의 권위에 대한 비정통 집단의 도전행위이며, 전쟁(戰爭)은 “국가 간의 군사적 충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문록·경장의 역(文錄·慶長の役)’으로 , 중국은 ‘항왜원조(抗倭援朝)’로 각기 용어를 다르게 쓰고 있다. 일본은 침략전쟁을 회피할 목적으로 ‘역(役)’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대체하고 있다. 중국은 분명한 전쟁인데도 조선을 도왔다는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6·25전쟁도 ‘항미원조(抗美援朝)’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 땅이름은 ‘문화의 화석’이다. 거기에는 땅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징과 인간의 감정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땅이름만 가지고서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왜 ‘말고개[정읍]’이고, ‘말티고개[속리산]’ ‘대티터널[부산]’인가. 말이 죽어서 묻은 고개라서 말고개인가, 아니다. 강원도 홍천의 7백 고지가 넘는 고개 역시 말고개라고 한다. ‘말’은 크다는 뜻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따라서 모두 ‘큰 고개’라는 뜻을 지닌다. 고부 두승산(斗升山)의 9개 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가 ‘말봉’이다. 만주의 장군총도 현지에서는 ‘말무덤’으로 통한다.(김재영.).

 

□ ‘배’와 ‘언덕’, ‘고개’와 ‘재’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배’는 평지에서 약간 위로 올라온 것을 말한다. 사람의 ‘배’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배는 나오는 것이 정상이다. 나오지 않으면 배가 아니다. 따라서 상대에게 배 나왔다는 말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그 뜻을 알면 ‘배흘림[엔타시스]’과 ‘민흘림’의 차이가 확연해진다.(김재영). ‘치(峙)’나 ‘현(峴)’은 구분이 모호한 편이나 ‘치’는 높고 험한 곳을, ‘현’은 관습적으로 칭하는 고개를 지칭하는 말로 쓰였다. 남원의 정령치와 덕천의 황토현이라는 지명으로 우리 주변에 남아 있다. 정확한 높이를 기준으로 설정할 수 없으나 관행적으로 구분해서 써 오던 방식으로 이와 같이 구분할 수 있다. 그 다음 단계로 산봉우리를 뜻하는 ‘봉(峰)’과 산맥을 가로지르는 ‘령(嶺)’이 있다. 

 

□ 신태인읍 화호리(禾湖里)는 일명 ‘숙구지(宿狗地)’로 불린다. 한때 이북에서는 정읍은 몰라도 숙구지라면 알 정도로 감자로 유명한 마을이었다. 이때의 감자는 지금의 고구마를 의미한다. 감자는 따로 ‘하지감자’로 불렀다. 원래 화호는 ‘수곶’이었다. ‘곶’은 원래 육지에서 바다로 돌출된 지형으로 ‘고지’ ‘꼬지’ ‘구지’ ‘꾸지’등으로 변형되었다. 이러한 지형은 부안 고지명에 장족리, 가야곶리, 진곶리로 나타나 있다. 부안 모산리 불곶이는 부꾸지-북꼬지-북구지로, 화호는 수고지-수구지-숙구지로 변형되었다.(부안역사문화연구소, <부안이야기>). 신태인읍 구석리 남계마을은 원래 하석곶리였다. 김정호(金正浩)의 「대동여지도」에는 70여 곳의 곶 지명이 해안지방에 보인다. 이 지명은 서남해안 특히 서해안에 많다. 곶 지명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해안선이 복잡해 돌출 부분이 많음을 말해주고 있다. 수고지에서 ‘수’는 벼의 고어이다. 따라서 화호는 ‘벼의 고장’이라는 뜻이다. 김제의 벽골제(碧骨制)도 ‘벼+고을’로 볏고을이 벽골로 변한 것이다. 이 역시 ‘벼의 고장’이라는 뜻이다.(김재영). 

 

□ 해물탕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게 ‘미더덕’이다. 볼품은 없는데 톡톡 터지는 식감에다 마치 멍게와 비슷한 향이 제법이기 때문이다. 일부 식당에서 식재료 값을 아끼기 위해 미더덕 대신 비슷한 오만둥이로 대체하는 바람에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는 사실 구분하기 어렵다. 거기에다 더덕은 더덕인데 앞에 ‘미’자가 붙었다. ‘미’는 무슨 뜻을 가진 말일까. 물의 고어가 바로 ‘미’다. 그러니 미더덕은 ‘물더덕’이라는 뜻이 된다. ‘미’가 물이니 물기가 있으면 그래서 미끄러운 것이다. 미끄럽다, 매끄럽다, 미끈미끈하다, 매끈매끈하다가 다 여기서 파생되었다. 물에서 크는 것이니 그래서 ‘미나리’라는 이름이 붙었다. 물에 타 먹는 ‘미숫가루’도 마찬가지다. 우리말이 건너 간 것으로 보이는 일본어의 ‘미즈’가 물이고, ‘미샤샤’의 뜻이 우리말로 ‘물 솟아’이다.(김재영).

 

□ 석가는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공자는 은행나무 아래[杏亶]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유홍준은 <답사기> 서울편에서 성균관에 있는 은행나무의 단풍들 때의 아름다움만을 찬탄(讚歎)할 뿐 은행나무가 왜 거기에 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향교나 서원 어디를 가든 어김없이 은행나무가 있다. ‘행’은 은행나무의 뜻도 있지만 살구나무의 뜻이 있다. 과연 공자는 은행나무에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쳤는가.(김재영).

 

□ 연구자라고 해서 다 알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배우는 사람은 늘 ‘왜’라는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하고, 가르치는 사람은 이에 ‘답’을 줄 수 있도록 항상 궁리해야 한다. 스승은 설명으로 학생을 가르치지만, 학생은 질문으로 선생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래서 <예기(禮記)>에 “남을 가르치는 것은 반은 배우는 것이 된다.”고 한 것이다.

 

□ 요즘은 통용될 수 없는 말이라고 하겠지만 사람이 돈이 너무 많으면 게으름이 몸에 배어 공부를 못하는 법이라고 했다. 옛날 선비들은 적어도 그랬다. 절약하고 검소한 것이 몸에 배었다. 공부란 그렇다고 옛날같이 호구지책(糊口之策)이 마련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먹고사는 일에 얽매이게 되면 공부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기 마련이다. 삶이 무의미하지 않도록 죽을 때까지 공부하기 위해서는 생산적인 일에도 어느 정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 석가는 “인생은 덧없으니 쉬지 말고 정진하라.”고 했다. 율곡은 “공부는 죽은 뒤에야 끝나는 것”이라 했다. 그의 「자경문(自警文)」에 나오는 내용이다. 성철스님은 “밥은 죽지 않을 만큼만 먹고 옷은 살이 보이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공부는 밤을 새워서 하라.”고 했다. 한술 더 떠 조계종 제10대 종정 혜암 스님은 “공부하다 죽으라.”고 했다. 사람은 휴식과 안정을 취하고 있을 때 가장 창의적인 생각이 떠오르는 법인데 공부하다 죽으라니 너무 가혹한 주문이다. 아무튼 공부를 하다 죽든, 놀다 죽든 그것은 본인의 의지와 선택에 달려 있는 문제다.

 

□ 어른이란 ‘얼’이 익은 사람이다. ‘어린이’는 얼(혼) 자체인 사람이다. 따라서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어리석다는 말을 의미한다. 직역하면 얼이 썩었다는 이야기다. 늙으면 지혜로워진다는데 그게 아니다. 나이가 든다고 인격이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살아온 경험-치로 보건대 오히려 자기주장만 앞세우는 뻔뻔스러움이 더 는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을 곱게 써야 하는데 온화해지기는커녕 아집이 강해지고 쉽게 분노하고 폭발한다. 문제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말하는 ‘꼰대’가 달리 ‘꼰대’가 아니다.(김재영.).

 

□ 그럼 꼰대와 어른은 어떻게 다를까. 대안교육 전문가인 여태전 상주중학교 교장이 「경남도민일보」에 쓴 칼럼에서 명쾌하게 정의를 내렸다. “꼰대는 성장을 멈춘 사람이고, 어른은 성장을 계속하는 사람이다.” 죽을 때까지 시대 변화에 맞게 공부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아이는 내일(미래)에 살고, 어른은 어제(과거)에 살기 있기 때문이다.

 

□ 요즘은 비단 꼰대가 나이 든 사람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젊꼰’도 있다. 젊은이든 나이가 들었든 이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사실 의미가 없다. 우리 주변에 반드시 이런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나이가 들면 생각을 고치기 어렵다고 하는데 아니다. 이는 변명에 불과한 말이다. 자신이 고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 대종사는 “어리석은 사람은 남의 허물만 밝히기 때문에 늘 제 앞이 어둡고, 지혜 있는 사람은 늘 자기 허물을 살피느라 남의 시비를 볼 틈이 없는 법이라”고 했다. 

 

□ 10대를 일러 ‘철이 없다’고 한다. 20대는 ‘답이 없다.’고 한다. 나이 든 어른의 입장에서 본 이 말이 과연 맞는 것인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 한데 요즘 보면 나이가 들었는데도 그것도 60이 넘었는데도 철이 들지 않은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된다. 그 원인이 바로 ‘제철음식’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식물은 봄에 싹이 난다. 여름에는 가지와 줄기를 뻗고, 가을에 열매를 맺는다. 이 계절에 영양분이 뿌리로 가기도 한다. 겨울에는 수확한 열매를 저장하는 것이 ‘생장염장(生長斂藏)’이라는 자연의 이치다. 이 이치는 태어나서 자라고, 청년기를 지나 장년기를 거쳐 노인이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인간에게도 똑 같이 적용된다. 따라서 자연의 이치 그대로 봄철에는 새싹음식을 먹으면 된다. 여름에는 줄기음식을, 가을에는 열매음식을, 겨울에는 뿌리음식을 먹어야 한다. 순리(順理)를 따르는 사람이 철이 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철이 들지 않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제철음식이 아닌 것을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먹는 것을 자랑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김재영).

 

□ 정읍은 풍수상 도시전체를 배의 형국으로 보기도 하고, 금거북이 진흙탕에 빠진 ‘금구몰니형(金龜沒泥型)’으로 보기도 한다. 도시 전체를 배의 형국으로 보는 것은 전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 가운데 평양을 풍수 상 대표적인 행주형(行舟形)으로 보고 있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을 팔아먹을 수 있었던 배경도 배의 형국에서는 우물을 파면 배의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 배가 가라앉기 때문에 우물을 파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민들은 대동강물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희대의 사기꾼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팔아먹을 수 있었던 배경에 풍수가 있다.(김재영).

 

□ 정읍은 청동기 시대 고인돌이 45개소 177기가 분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수치는 고창에 이어 전북지역에서는 두 번째로 많은 분포를 보이고 있어 정읍이 고창과 함께 고인돌 문화의 중심지를 이루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돌이 주로 서해안 일대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은 아득한 선사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이 이곳 따뜻한 남쪽으로 내려와 농경생활을 했음을 알 수 있다. 

 

□ 중국 고대 전설상의 인물인 복희(伏羲) 때 하수(黃河)에서 용마(龍馬)가 지고 나왔다는 55개의 점으로 된 그림이 바로 ‘하도(河圖)’이다. 천지와 만물의 본성을 근원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 하도와 짝을 이루는 것이 ‘낙서(洛書)’다. 낙서는 중국 하나라의 우임금이 낙수라는 강에서 구한 거북이 등에 씌어 있었다는 45개의 점으로 된 아홉 개의 무늬를 말한다. 여기서 ‘팔괘’와 ‘홍범구주(洪範九疇)’라는 용어가 나왔다. 하도는 낙서와 함께 주역(周易)의 기본 이치가 되는 그림이다. 하도의 ‘도(圖)’와 낙서의 ‘서(書)’자를 딴 것이 도서관(圖書館)이다.

 

□ 인문학은 평생학습의 대상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소유냐, 존재냐’ 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명쾌하게 설명한 독일의 철학자 에리히 프롬이 말했다. “인문학을 공부하면 어떤 방식이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왜, 인문학자 박석무가 말했듯이 ‘인문학이란 사람 되는 공부’이기 때문이다.

 

□ 인문학을 공부하면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달라져야 한다. 인문학을 공부하고서도 달라지지 않았다면 공부하지 않은 것과 같다. ‘인문학을 왜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부터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김재영).

 

 

에리히 프롬, <소유냐 삶이냐>, 홍성사, 1976.

이성우, <한국식품문화사>, 교문사, 1984.

배우리, <우리 땅이름의 뿌리를 찾아서> 1,2권, 토담, 1994.

주강현, <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한겨레신문사, 1996.

김의원, <국토이력서>, 매일경제신문사, 1997.

나종우, ‘정유재란400주년기념 국제 심포지움’ 「임진·정유왜란과 전라도 정신」,

<정유재란과 전라도 정신의 재조명>, 전북애향운동본부·한일관계사연구회, 1997.

조준상 기자, ‘20세기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기록하라’, 「한겨레신문」, 2003년 8월 4일자.

이이화, <전봉준, 혁명의 기록>, 생각정원, 2014.

김재영, <김재영의 역사인문학 99강>, 대흥인쇄기획(정읍), 2019.

이용우 번역·이용엽 정리,

<일기 속 100년 전 전주이야기, 이상래 선생의 일기>, 신아출판사, 2019.

한문종, 「이재난고의 연구현황과 과제」, ‘황윤석의 西行日曆과 科擧’ 학술대회, 2021.

고윤정, ‘민초들의 우국충절과 상징, 호벌치 전투’, <전북문화 살롱>, 202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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