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주의 ‘나정(蘿井)’과 전북 정읍의 ‘정해(井海)’ 마을의 우물
‘청라언덕’이라는 노래가 있다. 이 노래가 ‘담쟁이덩굴’이 있는 대구의 언덕을 소재로 만들어 진 노래라는 사실을 아는 이가 드물다. ‘푸를 청(靑)’에 ‘담쟁이덩굴 라(蘿)’이다. 노산 이은상이 노랫말을 쓰고 대구 출신 작곡가 박태준이 여기에 곡을 붙인 것이다. 청라언덕은 대구의 ‘몽마르트 언덕’으로 불린 지 이미 오래다. 가을이면 담쟁이덩굴이 빨갛게 물드는 단풍명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 나정이라는 우물에서 태어나다
‘담쟁이덩굴’이 있는 ‘나정(蘿井)’이라는 우물에서 태어난 사람이 바로 신라 시조 박혁거세다. 왕비인 알영부인 역시 ‘알영정(閼英井)’이라는 우물에서 태어났다. ‘담쟁이덩굴’은 영어로 ‘아이비(Ivy)’가 된다. 아이비가 미국의 명문대학인 줄로만 알았는데 ‘담쟁이덩굴’을 뜻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학생복을 만드는 회사가 굳이 아이비라 네이밍한 것은 명문대학을 지향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이해해왔다.
*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깃들어 있는 경주 나정(사진 : 정읍역사문화연구소) 원래 우물 주변에 90평에 이르는 팔각형 건물지가 있었다.
건물을 굳이 팔각으로 한 것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알고 보니 ‘담쟁이덩굴’은 공기정화 기능이 뛰어난 환경 친화적인 식물이다. 이 식물이 자라는 곳은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을 의미한다. 이 우물에서 알이 나왔으니 우물은 ‘생명의 탄생지’를 의미한다. 이는 물이 가지는 ‘생명력’이라는 상징성에서 비롯된 설화이다. 바닥은 황토와 숯을 섞어 살균작용을 하게 만들었다.
이와 같이 신라 땅에 탄생설화와 관련된 우물이 있는 반면에 옛 백제 땅 정읍에는 정해(井海)라는 ‘샘바다’ 마을에 큰 우물이 있다. 우물 가까운 곳에는 보화교(普化敎)라는 신종교의 수련원 내에 거대한 고인돌과 같은 바위가 마당 한 가운데 떡 버티고 있다. 뭔가 독특한 사연이나 전설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지을 수 없다. 실제로 그렇다.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옛날 이곳이 바다였다는 구전이 있다. 그 바다 구멍을 막은 것이 바로 보화교 수련원 내에 있는 고인돌과 같은 큰 바위다. 보화교 수련원에서는 신성한 바위라며 지금도 사진은 물론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바위다. 보화교가 이곳에 자리 잡은 것도 아마 이 같은 이유에서가 아닐까. 아무튼 정읍은 풍수 상 배가 떠다니는 ‘행주형(行舟形)’의 형국으로 각 가정에서 우물을 파면 배가 가라앉는다는 논리에 따라 각 가정에서는 우물을 팔 수 없었다. 그러니 마을 주민들은 생활용수를 큰 시암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정읍시에서는 1994년 시의 상징우물로 삼기 위해 원래의 위치에 주변을 정비하고 우물을 복원하였다. 2024년 5월 정읍이라는 지명의 상징성에 걸맞게 보존 관리해야 할 첫 번째 우물로 지정하였다. 이곳에서 매년 정읍사문화제 행사시 채수의식을 하고 있다. 정해는 탐진 안씨가 주성을 이루고 있는 마을이다. 이밖에 영화 ‘장군의 아들’ 촬영지로 유명한 이화담 앞 뜰에 원형 석축 구조의 우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소유자 추정 1890년대의 것으로 보고 있다. 비빔짬뽕으로 유명한 양자강 맞은 편에 있다.
정해마을은 큰 우물을 가지고 넓은 행정구역을 다스리던 치소였을 것
2003년 첨단방사선 연구센터가 있는 신정동 유적에서 청동기 시대 집터가 발견되었다. 입암면 신면리 일대에서는 마한시대와 백제시대의 마을 및 집터 유적과 분구묘 8기 등이 발굴되었다. 이 같은 신정동 일대의 마한시대 주거지의 발견은 그간 정촌현으로 전해오던 정해마을 주변 지역이 청동기 시대부터 마한시대를 거쳐 백제시대까지 역사의 단절 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었다. 지표조사 결과 백제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 지역이 무려 20개소가 확인되었다.
발굴을 주관했던 전 전북대학교 고고인류학과 윤덕향 교수는 “이들 자료를 분석한 결과 백제관련 유물 산포지들은 우물이 있는 정해마을에서 부귀, 간등, 백제고분군이 발굴 조사된 금구마을로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으며, 이 지역에서 벗어나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분포 상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이 지역이 백제시대에 하나의 중심 생활권을 이루었다는 것을 추측하게 해 준다.”라고 발굴 결과를 평가하였다. 또 신정동 백제고분군에서 금으로 만든 귀걸이나 옥(玉), 철제대도나 토기와 같은 풍부한 유물의 출토를 통해 피장자의 신분이 이 지역의 ‘유력자’였음이 확실시되고, 신정동 일대의 백제유물 산포지들은 이러한 ‘유력자’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뿐만 아니라 정해마을 서편 북쪽 밭과 마을을 가로 지르는 길 동쪽에서 각각 회청색 경질토기편 2점과 1점이 발견되었다. 주변 간등 마을에서도 같은 토기편이 다수 출토되었다. 모두 백제토기였다. 이러한 발굴 결과 정해 마을이 백제 때의 치소가 있었던 정촌으로 간주된 것이다.
《참고문헌》
김재영, 『내 고장 역사의 숨결을 찾아서』, 해와달(서울), 1996.
김재영, 『샘솟는 땅 정읍의 문화』, 신아출판사(전주), 1996.
정읍시, 『정읍사 유적재현과 활용을 위한 연구』, 인문사아트콤, 2003.
KBS HD 역사스페셜, ‘신라건국의 수수께끼, 나정은 알고 있다’, 2005년 6월 24일 방송.
김재영, 『정읍을 이야기하다 정읍을 노래하다』, 도서출판 기역(파주), 2021.
김재영, 「사료로 본 정읍사 망부석의 위치, 북면 월붕산에 있었다」,
(사)노령역사문화연구원 창립학술대회 논문, 2022.
김재영, 「샘고을 ‘정읍’의 종교적 장소성과 상징성」, 『정읍문화』,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