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강점기 형평운동과 보천교의 연대관계
김재영(사단법인 한국향토사연구전국연합회 부이사장, 문학박사)
영남지방 형평 지·분사에 참여했던 일부 인사가 보천교(普天敎)1) 의 신자였었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형평사 설립의 핵심 멤버인 신현수·강상호·조우제 등은 형평사가 조직되기 이전인 1923년 3월 중순 경 학교설립 자금을 지원받고자 정읍으로 출장한 적이 있었다.2)
반면에 보천교에서는 1923년 5월 13일 형평사 창립 축하식에 보천교도인 조우제가 참석하여 축사와 함께 운동비용을 기부함으로써 지지의사를 간접 표명한 바 있다.3) 『개벽』에는 이들과 보천교의 관계가 아주 우호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여기에 실린 기사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진주 안의 경남 보천교의 두령으로 該敎의 발전을 위하야 만흔 노력을 하고 잇는 동아일보 지국장 鄭準敎, 全記者 尹炳殷, 吳景杓, 조선일보 지국장 申鉉壽, 晉陽商會主 姜大冀 제씨와 개인으로는 沈斗燮, 姜相鎬, 鄭成鎬, 姜大喆, 金亨權, 千錫九 제씨 외 수인이 금번 전북 정읍에 在한 보천교 중앙 교실 내 교주 차천자께 謁見하고 이여 七星壇下에 기도하고 金拾萬圓을 拜受하야 歸晉 后 眞正院을 건축할 예정으로 再昨 15일 진주를 떠나 정읍으로 향하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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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는 정준교, 윤병은, 신현수, 강상호, 천석구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당대 진주지역 유명인사들이 함께 하고 있다. 형평운동의 선도자인 강상호는 국채보상운동 경남회 조직, 진주 사립일신고등보통학교 설립운동, 3·1독립만세운동 주도, 경남도청 이전 반대운동, 신간회 간사, 「동아일보」 창간 발기인, 「동아일보」 초대 진주지국장 등을 역임했으며, 정준교 역시 진주지역 3·1독립만세운동 당시 촉석광장(공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5)
신현수는 진주에서 그의 선대가 한약방을 경영하면서 상당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고, 조선일보 진주지국장을 역임하였다. 이밖에도 진주저축계, 진주청년회를 조직하고, 진주기근구제회, 동우사 등에 참여하였다.6)
윤병은은『조선민보』 진주지국 기자의 신분을 가진 보천교 신자였다.7)
진주에서 형평운동을 주도한 천석구는 1923년 5월 6일 강대창(姜大昌)·심두섭(沈斗燮)·정성호(鄭成鎬) 등과 함께 보천교소년회를 조직하여 활동했던 인물이다.8) 천석구는 진주 사람으로 종이와 장판 등의 품목을 취급하는 가계를 경영하면서, 형평사 창립에 참여할 즈음에는 진주 금주단연회,9) 진주저축계10)에 참여했던 사회운동가였다. 바로 이러한 형평사의 인적 구성은 보천교와 연대관계를 추진하는데 용이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렇게 진주지역의 저명한 사회운동가들이 보천교 신자가 되었던 것은, 당시 시대적인 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20년대 초는 3·1독립만세운동이 실패로 돌아간 뒤, 우리 민족이 구심점을 상실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때에 등장한 보천교의 ‘천자등극설’은 보천교가 독립을 염원하며 암암리에 독립운동을 추진하는 민족종교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하였다.11)
따라서 형평운동 초기 보천교와 연대 필요성을 느끼고 이를 적극 추진했을 것이다. 종교적으로는 “도한(屠漢)과 무당을 천시하지 말라.”는 증산의 가르침 때문이었을 것이다.
참고로 보천교는 일제가 유사종교(類似宗敎)라는 굴레를 씌워 일제강점기간 내내 탄압했던 대표적인 민족종교였다. 최근 역사학자이자 종교학자인 안후상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보천교와 보천교계 신종교 관련자 가운데 독립유공자로 지정 받은 이가 무려 154명이었다는 사실이 공개됨으로써 보천교가 민족종교였음이 다시 입증되었다.12)
주)
1) 보천교는 1909년 강증산(姜甑山) 사후 월곡(月谷) 차경석(車京石)에 의해 창시된 신종교로 증산교계 종단 가운데 가장 교세가 컸다. 그 본부가 정읍시 입암면 대흥리에 있었다.
2) 강상호의 부인인 이춘엽 씨의 도움말(1984년 5월 9일), 김중섭, ?1920년대 형평운동의 형성과정?, ??동방학지??제59집,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1988, 248쪽.
3) 『동아일보』, 1923년 5월 17일; 『조선일보??, 1923년 5월 19일.
4) 『개벽??제35호, 1923년 5월호, 59쪽.
5) 조규태, 『백촌 강상호』, 펄북스, 2020, 39-59쪽.
6) 조규태, 위의 책, 88-90쪽.
7) 『조선일보』, 1923년 6월 15일.
8) 『동아일보』, 1923년 5월 10일. 심두섭은 진주지역 3·1독립만세운동의 구체적인 방법과 시기를 강달영, 김재화, 박대업, 박진환 등과 논의하고, 3월 18일 법원 앞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조규태, 『백촌 강상호』, 펄북스, 2020, 49쪽.).
9) 『동아일보』, 1923년 3월 29일.
10) 『동아일보』, 1923년 9월 8일.
11) 보천교 천자등극설에 관한 글은 필자의 「보천교 천자등극설 연구」 (『한국종교사연구』 제9집, 한국 종교사학회, 2001)를 참고할 것.
12) 민족운동 관련 선정인물(1918-1945)은 2021년 4월 26일 현재 국가기록원 「독립운동관련판결문」, ‘수형인 명부’, ‘형사사건부’,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독립유공자 공적조서」 외 독립운동관련판결문에 없는 다수 관련 판결문을 참고로 총424명의 유공자를 분석한 논문이 발표되어 학계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자세한 것은 안후상, 「일제강점기 보천교의 민족운동 연구」, 전남대학교박사논문, 2022을 참고할 것.
‘형평운동 100주년기념학술대회 기조강연’ 김재영, 「일제강점기 형평운동의 권역별 특징」 중에서 발췌.
국립경상대학교 박물관 대강당(2023.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