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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의 ‘포석정(鮑石亭)’과 전북 정읍의 ‘유상대(流觴臺)’ (연재11편), 김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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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의 ‘포석정(鮑石亭)’과 전북 정읍의 ‘유상대(流觴臺)’

 

 

포석정은 신라 경애왕(景哀王, 890-927)이 후백제 왕 견훤이 경주까지 침공해왔을 때 포석정에서 놀고 있었다는 기록 때문에 ‘망국의 상징’이라는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곳 포석정에서 1km 이내에는 박혁거세(朴赫居世)가 탄생했다고 하는 나정이 있어 신라의 시작과 멸망이 모두 이 곳에서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포석정은 대체로 국왕이 즐겨 놀던 곳이고, 유상대는 최치원(崔致遠)의 풍류와 관계 깊은 곳이다. 놀이치고는 우아하고 선비다운 품격이 있는 놀이임에 분명하다. 

 

 

정읍풍류의 맥을 잇다. 유상대와 최치원

 

태산 고현, 지금의 칠보면 일대는 산자수명(山紫水明)하고 인심이 순후하며 자고로 구암(영암), 금성(나주) 더불어 호남의 ‘3대 양택지(명당)’로 손꼽혔다. 태산은 정읍사시井邑四時 봄 초산운인楚山雲姻, 여름 칠보임학七寶林壑, 가을 내장상풍內藏霜楓, 겨울 두승천석斗升泉石 가경(佳境) 중 하나였다.(백강흠). 「상춘곡」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다. 음악으로 치면 ‘나보다 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했던 베토벤의 전원교향곡 1악장을 연상케 한다. 

 

무성서원이 있는 칠보 원촌의 이웃 마을 동편에는 최치원이 술잔을 띄우며 풍류를 즐겼다는 유상대(流觴臺)가 있고, 태인에는 그가 음풍농월하며 소요했다고 하는 피향정(披香亭)이 있다. 여기서 풍류를 주색과 가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정극인은 「상춘곡(賞春曲)」에서 자연을 좋아하고 속세를 떠난 자신의 삶을 풍류라 여겼다.

 

최치원은 유학자이자 최고의 문인이었으며 정치가였다. 외교적으로는 국제통이었다. 그는 고려 전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천년 동안 우리나라 문장의 시조[文宗]이자 유교의 종장[儒宗]으로 추앙받았다. 고려 현종 때 문창후(文昌候)로 추증되어 공자를 모시는 문묘에 배향된 신라 최초의 인물이다.(남동신). 그는 6두품 출신으로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으로 혜성같이 등장했지만 자기의 뜻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후대에 이규보, 김시습, 휴정, 이서구, 최제우, 김항 등 삼교의 회통 내지 조화를 주장하는 학자와 종교인들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쳤다. 

특히 최제우는 최치원의 후손으로 ‘하늘을 떠다니는 고운(孤雲)’과 ‘물에 비친 구름이라는 뜻의 ‘수운(水雲)’이라는 호에서도 사상적 맥락이 같음을 알 수 있다. 최제우는 유·불·선 삼교에서 정수만을 뽑아 동학이라는 민족종교를 탄생시켰다. 동학 교단의 조직인 ‘포접제’는 최치원의 「난랑비서」에 나오는 ‘포함삼교(包含三敎), 접화군생(接化群生)’의 ‘포(包)’와 ‘접(接)’에서 따온 것이다.(최영성).

 

 

포석정과 유상대의 같은 점과 다른 점

 

포석정과 유상대 모두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이라는 놀이를 하던 곳이다. 유상대가 9세기 최치원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어 조성된 시기도 두 정원 유적이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재현까지 했다고 하니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도 술잔이 떠내려가면서 엎어지거나 부딪치지는 않을까 하는 의구심은 여전하다. 포석정은 말 그대로 전복[鮑] 형태로 만든 구조로 되어 있다. 주변에 섬돌(디딤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정자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두 곳이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는 신라 땅인 경주에 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옛 백제 땅인 정읍에 있다는 점이다. 또 포석정은 사적 1호라는 상징적인 곳이기도 하지만 인공을 가해 만들었다는 점과 유상대는 자연 그대로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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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는 수로 위에 정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수로 입구에는 물을 토해내는 거북 모양의 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진 것은 확실하나 정확한 시기는 밝혀지지 않았다.(사진 : 정읍역사문화연구소).


 

‘유상곡수연’은 굽어진 물길을 따라 둘러앉아 흐르는 물에 띄운 술잔을 마시고 난 뒤 시 한수를 즉흥적으로 읊는 놀이다. 일종의 ‘시회(詩會)’라 할 수 있다. 이밖에도 우리 선조들은 달밤에 술자리를 마련하여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면서 시를 짓고 자연을 즐기기도 했다. 술을 마셔도 이렇게 격조가 있었다. 이것이 풍류다. 풍류는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며, 안빈낙도(安貧樂道)하는 것이다.

 

 

어진화사 채용신의 칠광도(七狂圖)에 그려진 유상대

 

‘유상대’는 중국 동진의 왕희지(王羲之)가 현재의 절강성 소흥현(小興縣)의 난정(蘭亭)에 있던 ‘유상곡수’의 연회에서 유래한 것으로 최치원이 태산태수로 재직할 때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그 모습이 남아 있지 않고 유림들이 1919년 해당 지역으로 추정되는 곳에 감운정(感雲亭)이라는 정자를 지었다.(박정민). 

 

신필화가 채용신이 그린 칠광도(七狂圖)에는 유상곡수의 모습이 온전하게 보이지 않는다. 칠광도는 칠보 시산(詩山)에서 내려다 본 원촌마을과 동편마을 등 태산선비문화권의 중심을 그린 것으로 광해군 때 시대를 걱정하며 은거한 7명의 선비들의 모습도 함께 그려져 있다. 감운정은 필자의 고향으로 어렸을 적 멱 감고 놀던 곳이다. 우린 감운정을 예나 지금이나 유상대라 부른다. 커다란 바위와 작은 바위가 어우러져 곡수의 형태가 남아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지금은 흔적이 남아 있지 않지만 이곳 사람들은 여전히 유상대와 최치원을 연결 짓고 있다.

 

 

 

《참고문헌》

 

백강흠, 『정읍시가 3대 유보고』, 공익사(전주), 1989.

한국문화유산답사회, 『답사여행의 길잡이2 경주』, 돌베개, 1994.

전국교직원노조 경주지회, 『셔블 길잡이』, 1995.

남동신, ‘청운의 꿈 못다 이룬 불우한 지식인 최치원’, 『영남을 알면 한국사가 보인다』, 

푸른역사, 2005.

조용헌, ‘유상곡수(流觴曲水)’, 「조선일보」, 2007년 11월 23일자.

이흥재, 『정읍 선비의 길을 걷다』, 홍다지인(서울), 2009.

『정읍시립박물관 제4차 기획 특별전, 외로운 구름, 태산에 깃들다』, 정읍시, 2013.

유종국, 「태산선비의 풍류 전통」, 『정읍시립박물관 제9차 기획특별전 태인 방각본』, 정읍시, 2016.

최영성, 「한국사상사에서 최치원의 위상」, 『최치원 태산태수 부임 1,130주년 기념 최치원 문화자원 활용 학술대회』, 전라북도·정읍시, 2017.

김재영, 『김재영의 역사 인문학 강의』, 대성인쇄기획(정읍), 2018.

박정민, 「1900년대 초 태인 고현내의 경관 - 칠광도를 중심으로」, 『한국사연구』제189집, 

한국사연구회, 2022.

박정민, 「석지 채용신과 칠광도」, 『정읍시립박물관 제14회 기획 특별전 조선 어진화사 석지 

채용신』, 디자인 칸(정읍),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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