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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링컨이 말하는 나이 40과 내가 본 나이 40 (김재영, (사)정읍역사문화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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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링컨이 말하는 나이 40과 내가 본 나이 40

 

 

김재영 / 문학박사, 사단법인 정읍역사문화연구소 이사장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에서 자신을 이렇게 회고하였다.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立志)을 두었고,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다.” 공자는 이를이립(而立)’이라 표현하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마흔에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하여 이를불혹(不惑)’의 나이라 했고,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았으니 이를지천명(知天命)’이라고 했다

 

예순에는 남들이 어떤 말을 하든 그 이야기가 귀에 거슬리지 않았다 하여 이를이순(耳順)’이라 하였다.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고 했다. 이렇듯 공자는 인생을 10년 단위로 쪼개어 설계한 것이다.

 

인생 후반, 40대에 설계하라


나는 40대를인생 후반으로 보고 있다. 60이 넘은 퇴직 이후를인생 후반으로 보지 않는다. 대체로 퇴직을 전후로 한 65세를 전후로 한 시기를 인생 후반으로 보는 이유는 의학의 발달로 노화속도가 줄어들면서 나이 40정도는 청년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한 통신사에서 규정한 청년요금제를 보면 만 34세 이하까지로 되어 있다

 

우리나이 35, 그때부터는 아재로 취급하겠다는 이야기다. 한편 지방도시가 소멸되면서 청년 지원금을 45세로 확대하는 지역이 생겼다. 이로써 청년에 포함된 이들은 청년주거 및 창업공간 임차보증금 융자사업, '청년 창업자 지원사업'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향교에서는 청년회원의 나이를 60까지 보기도 한다.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노인정에서는 60대를 받아주지 않는다. 이렇게 청년을 보는 시각이 다양하다

 

하지만 전통적인 유가에서는 40세까지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완성을, 50세 이후에는 유교의 최고 덕목인성인의 도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옛날에는 50이 넘으면 노인의 길로 접어든 것으로 보고, 60이 되면 노인대접을 했던 것이다.

 

격세지감이다. 요즘 100세 시대를 맞이했다고 야단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게 즐거워할 일이 아니다. 모두가 100세를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80을 사는 것도 큰 축복이다. 사람의 평균수명을 80이라고 가정하더라도 나이 40이면 인생의 절반을 산 셈이 된다

 

통상 남자는 9, 여자는 12년 정도를 이런저런 병으로 고생하다가 저 세상으로 가는 것을 감안한다면 실제로 나이 40은 인생의 절반을 넘긴 것으로 봐야 한다. 그렇다면 건강수명으로만 따진다면 70이나 75세를 전후로 한 시기가 아닐까 한다. 따라서 40대에 인생 후반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설계가 없다면 인생이모작은 불가능할 것이다.

 

내가 지역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앞둔 시점이었다. 40 초반에는 정년을 앞두고 나올 것을 대비하여 지역의 역사문화를 연구할 수 있는 작은 공간을 하나 마련하고자 했다


2천년 무렵이었다. 어느 날 가수 한치영을 농초 박문기 선생이 운영하는 정읍 백학농원에서 우연히 만났다. 오카리나를 연주 작곡하는 한태주의 아버지라는 사실은 그 뒤에 알았다. 아들 한태주는 그의물놀이라는 곡이 KBS 프로그램걸어서 세계 속으로’의 시그널 뮤직으로 사용되어 일반에 널리 알려졌다


나는 지인을 통해 건네받은 시디를 통해서 가수 한치영이 해남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부른 노래는 주로 자연과 생명을 노래하는 곡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는 국민대학교 경영학과를 나와 한때 청와대에서 근무한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권력에 미련을 두지 않고 자연과 생명을 노래하는 가수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는 또 1982년 강변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할 정도의 뛰어난 가창력을 인정받았으면서도 기성가수의 길을 걷지 않은 것이다

 

내게는 그것이 참 대단한 배짱과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여기에다 그의 기타연주 실력과 고향을 사랑하는 애틋한 마음이 나를 감동케 만들었다. 나는 이 곡을 들으면서 언젠가는 지역의 역사문화를 노래로 입히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예전 생각 그대로 2013년 명예퇴직 후 역사문화연구소를 설립하고, 2021년에녹두꽃 피던 그 자리라는 음반을 냈다. 여기에는 작곡가이자 가수인 유종화 시인의 도움이 컸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노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지 꼭 20년만의 일이다. 정읍을 알리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은 노래를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뿐만이 아니다. 나는 젊었을 때 가지 못한 대학원을 나이 40이 넘어 석·박사 과정을 어렵게 마쳤다. 그래서 항상 가르치고 연구하는 후학들에게 당부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나이 40이 되면 인생 후반을 설계하라고. 우리 속담에사람을 보려거든 그 사람의 말년을 보라.”고 했다. 정읍출신 시인 박성우도 나이 40이 넘으면서어떻게 사는 것이 나답게 사는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한다. 아마도 마흔이 넘으면서 새로운 세상이 보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흔 두 살의 나이에 억울하게 죽은 동향 출신의 박정만 시인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40대 초반에 죽은 박정만(朴正萬) 시인을 생각하다


정읍시 산외면 상두리 출신의 시인 박정만(1946-1988)은 인생 후반을 설계해야 할 나이에 산 속 흙집 자연으로 돌아갔다. 박정만은 애먼 이유로 군사정권에 붙잡혀 3일간 받은 고문후유증으로 하소연할 데 없고 의지할 곳 하나 없는 상태에서 억울하게 죽었다. 그는 1965년 경희대학교에서 주최하는 전국고교생 백일장대회에서이라는 시로 장원을 차지하였다.

 

경희대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출판사 편집부장을 지냈으나한수산 필화사건에 연루되어 공안기관에 끌려가 영문도 모른 채 모진 고문을 당해 결국 그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당시 군사정권은 한수산이 1981년 「중앙일보」에 연재하고 있던 소설, 『욕망의 거리』에서 군부를 비하했다고 판단하였다. 그러고선 불온한 소설을 쓰도록 영향을 끼친 사람을 대라고 잔혹한 고문을 했다. 결국 한수산은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출판문제로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던 박정만의 이름을 댔던 것이다. 아무 죄가 없으니 아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는 인생이모작을 설계조차 못하고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는 죽음을 예감했던 지  그가 죽던 그 해인 1988년을 전후로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여 8권의 시집을 남겼고, 1989년에는 그의 유고시집이 나왔다. 남들이 다 사는 인생후반을 살지 못하는 대신 죽음을 앞두고 마치 뭔가를 쏟아 붓듯 시를 쓴 것이다

 

그가 쏟아 낸 것은 다름 아닌 삭일 수 없는 고통과 울분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시를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시를 쓰는 일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할 줄 몰랐다던 그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40대 초반에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다. 다행히 그의 사후에 온당한 평가가 이루어졌다. 1989년 현대문학상, 1991년 정지용 문학상을 받았다. 1999 12월에는 고향인 정읍 내장산문화광장에 그의 시비가 세워졌다

 

그는 40대에 죽었지만 80을 살고도 남들이 이루지 못할 일을 다 하고 세상을 떠났다. 내가 40이라는 나이를 생각하면서 박정만 시인을 떠올리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나이 40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이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사람은 나이 40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사람의 얼굴은 선천적으로 타고나기 마련이지만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외형적인 모습에서 그 위대함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40이 넘었을 때의 링컨의 모습에서 우리는 그것을 발견한다. 우리 속담에사람 모습, 열 번 변한다.”고 했다

 

마음을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얼굴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그 기준을 링컨도 나이 40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공자가 말한 불혹의 나이 40은 동서를 막론하고 인생 전반기의 완성이자 또 다른 삶을 선택하는 갈림길이지 않겠는가.

 

 


김동길, 『대통령의 웃음』, 민우사, 1976.

김명희, 「박정만 시 연구」, 창원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08.

강창희, 『정년 후의 80,000시간』,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 2010.

윤영걸, 『내 인생의 오후』, 천일문화사, 2010.

이수경, 「박정만 시의 전통지향성 연구」, 경희대박사논문, 2021.

최명표, 『정읍시인론』, 신아출판사, 2021.

김재영 인터뷰, jtv 「전북의 발견」천재시인 박정만’, 2023.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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