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 법정사 항일운동(1918) : 보천교 주도의 3.1 운동 이전 최대 규모의 반일운동 ⦁ '대 태평양회의 한국외교후원회'에 대표 2 명 파견 (1921) ⦁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5만원 지원 (1923. 5): 김구 "정읍에 큰 빛을 졌다" (태인 김부곤 선생 댁에서) ⦁ 김좌진 부대에 2만엔 지원 (1924) ⦁ 사회주의자들에게 1만엔 지원 (1922.1) ⦁ 의열단, 국민대표회의 등에 참여 (1923) ⦁ 민립대학 설립운동 참여 (1923) ⦁ 물산장려 운동지원(1923), "산업계" 발간 산업계: 조선물산장려회 기관지 ⦁ 만주 정의부와 보천교의 독립자금 모집 (1925) 조만식, 신채호 부인 박자혜 등이 보천교 간부로 활동 ⦁ '후천선경 신정부 건설운동' (1920, 30년대) 정읍 대흥리는 '정전제' 라는 경제 공동체, 토산 장려운동, 왜산 물산 안 쓰기 운동을 1930 년대까지 전개 ⦁ 입암면 대흥리를 '신정부'의 수도로 인식 ⦁ 600만 교인(보천교 기록), 100만 교인(일제 기록) ⦁ 일제는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려는 보천교를 경계하고 탄압함 (탄압 사례 가장 많음) ⦁ 황석산 고천제 (1921) : 나라이름 '時國’ 선포 천자등극운동의 확산, 일제 식민통지 강력 부정 ⦁ 고천제 이후 예비내각 구성 ⦁ 정읍 대흥리로 교인들이 이주(탄갈자) 정읍 대흥리를 신정부의 수도로 인식 ⦁ 정읍 대흥리에 상가와 공장 들어섬 왜산 물산 안 쓰기, 토산 장려 운동 등의 경제운동을 전개. 방직공업의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짐 ⦁ 일제의 탄압으로 경제 공동제(井田制) 무너짐 ⦁ 차경석의 사망으로 보천교 해제 (1936) ⦁ 현 중앙 본소(1923 년 준공)를 제외한 신 본소 건축물 50 여 동 전격 해체 시킴 . 조계사 대웅전, 고부 관청리의 조재흥 가옥만 현재 남음 ⦁ 1936년 월곡 차경석 사망이후 보천교계 신종교들의 비밀 활동이 정읍을 중심으로 계속됨 황극교, 미륵불교, 삼산교, 인도교, 조선건국단 등) ⦁ 1930, 40년대 국내의 항일운동 전무하였으나 보천교계 신종교들은 항일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신정부 건설을 도모함 ⦁ 보천교와 보천교계 신종교 : 민중의 집합체 ⦁ 황극교(영원면) 일제 식민통지 부정하고 고천제와 수령제(혼을 불러내 위로하는 의식)를 통해 민족의식을 고양함 (1930년대 후반) ⦁ 미륵불교 '신인동맹' (태인면) 일본 메이지 천왕의 '혼'을 불러내 꾸짖음, 일본에 亡자를 봄여 일본 패망을 기원 (1940년 전후) ⦁ 무극대도 (태인면) - 후천선경 신국가 건설 추구(1920,30년대) ⦁ 삼산교 (상교동) – 후천선경 신국가 건설 추구(1930년대 후반) ⦁ 인도교 (고부면) – 후천선경 신국가 건설 추구(1930 년대 후반) ⦁ 조선건국단 (입암면) -후천선경 신국가 건설 추구(1930년대 후반) ⦁ 일제는 '보천교’와 '보천교계 신종교’를 가장 많이 경계하고, 가장 많이 탄압함 (일제기록) ⦁ <2022년 7월 2일 현재 보천교 독립운동가> 일제 재판 판결문 기준 독립운동가 : 404명 (계속 증가) 이들 중 독립유공자 지정 : 157명 (계속해서 증가되고 있음) 불교계 독립유공자 98명. 개신교나 천주교, 천도교 등과 비교해 훨씬 많은 독립유공자 나옴 ⦁ 정읍 민족종교의 독립운동 중심지, 민족종교운동의 성지로서 정읍을 중심으로 한 민족종교 : 동학, 강증산, 보천교, 무극대도, 황극교, 미륵불교, 조선건국단, 인도교, 삼산교, 보화교 등 ⦁ 일제강점기 민족종교는 민중 세력이 주축으로 형성되었으며, 민중들의 민족운동(독립운동)은 토속적, 민족적 모습. 그러나 지금까지 '역사학계'에서는 이를 보지 못함. ⦁ 정읍의 큰 자산 동학농민운동의 변현變現, 일제강점기 보천교의 독립운동! * 김구 "정읍에 큰 빛을 졌다"(태인 김부곤 선생 댁에서) * 이승만 "정읍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발표" |